신약성서 마태복음 제20장에 예수가 제자들에게 천국과 구원을 포도원 품꾼 이야기에 빗대어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요지는 ‘천국은 집주인이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하는 것과 같으며, 포도원에 처음에 들어와 하루 한 데나리온을 받고 일하는 사람과 나중에 들어와 1시간만 일하고도 똑 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포도원에 먼저 들어와서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 주인에게 원망하자, 주인은 ‘자신은 약속한 바대로 했기에 잘못한 것이 없으며, 나중 온 이 사람과 먼저 온 사람 모두에게 똑 같이 주는 것이 자신의 뜻이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고 말하고 있다.
위 신약성서는 종교적 구원은 경력이나 경험의 다과나 선후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인류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은 현대의 노동법적 관점에서는 검토해 볼 문제가 있다.
근대 초기에 시민계급의 주도로 성립된 자본주의 사회는 그 시대적 요청에 걸 맞는 시민법을 확립하였는데, 시민법은 모든 법 영역에서 소유권 보장, 계약자유의 원칙, 과실 책임의 원칙을 기본원리로 하고 있다. 자유로운 계약에 따라 8시간을 일을 한 근로자가 1 데나리온의 임금을 받기로 하고, 1시간을 일을 한 근로자가 1 데나리온의 임금을 받기로 하였다면, 위 근로계약은 유효하다. 이는 모든 계약 주체가 합리적 이성을 가진 인간임을 전제로 한 시민법 체계 하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8시간을 일을 한 근로자와 1시간을 일을 한 근로자가 동일한 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법 감정에 반하고 형평과 정의의 관점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무엇보다 사용자와 근로자가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계약을 체결한다고 보는 것은 양자 간에 경제적 실력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도외시한 지극히 형식적인 발상이다. 실제로 임금만이 유일한 생계수단인 근로자는 사용자가 제시하는 근로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위와 같이 계약 내용의 불합리성과 불평등을 이유로, 8시간 일을 한 품꾼이 원래 약정을 무효로 하고 주인에게 1시간만 일을 한 품꾼보다 8배의 임금을 더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가?
8시간을 일을 한 사람과 1시간 일을 한 사람이 같은 임금을 받기로 했다면 근로계약은 유효하다. 그러나 노동법은…
위 문제에 대한 해답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노동법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노동법은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실질적 경제적 실력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시민법의 기본 원리를 수정하여 근로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해 주고 자본주의를 지속시키기 위한 절충안으로 만들어졌다.
구체적으로 시민법의 기본 원리인 소유권 보장, 계약자유의 원칙, 과실책임주의 원칙이 노동법 영역에서 어떻게 수정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노동법은 계약자유의 원칙을 수정하여 가장 중요한 근로조건이라 할 수 있는 임금의 최저 수준을 정하고, 연소자나 여성의 취업을 제한하고, 장시간노동과 심야노동을 제한하는 내용으로 발전하였다. 둘째, 산업재해문제에 대하여는 사용자의 고의나 과실이 없더라도 당연히 일정액의 보상을 받도록 하는 산재보상제도가 노동보호법의 일환으로서 도입되었다.
셋째, 실업과 취직의 문제에 관하여는 국가가 구직자에게 직업소개나 직업훈련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취직지원제도나 실업자에게 보험급여를 지급하는 등의 생활지원제도가 발전되었다. 또한, 영리직업소개업의 폐해를 막기 위하여 근로자의 취업에 관여하는 이른바 중간착취를 엄격히 규제하는 입법도 이루어졌다. 넷째, 근로자의 단결활동을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근로자의 파업 등이 야기하는 시민법상 책임을 완화하는 입법도 이루어졌다. 다섯째, 독일 등 일부 선진 유럽의 국가에서는 기업경영에 있어서 근로자대표를 경영에 참가시키는 제도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이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차례이다. 예시한 포도원 품꾼 사례의 경우, 노동법이 존재하지 않고 시민법만 존재하는 사회라면 사용자와 근로자가 어떠한 내용의 근로계약을 체결하더라도 그것이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이라면 유효하므로, 법적 문제를 제기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노동법이 존재하는 사회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8시간 근로의 대가로 1 데나리온을 지급하는 근로계약은 최저임금법에 위반하는 한도 내에서 무효이고, 무효인 부분은 최저임금법에 정한 기준에 따르게 된다. 따라서 종일 포도원에서 근무한 근로자는 포도원 농장주를 상대로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 차액을 청구할 수 있고, 최저임금법을 위반한 주인은 형사상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이렇듯 ‘종일 근무한 품꾼과 몇 시간만 근무한 품꾼에게 동일한 임금을 주는 것이 내 뜻이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라는 포도원 농장주의 항변은 노동법 영역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더 나아가 품꾼들은 단결하여 노동조합을 만들고 포도원 농장주와 교섭을 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함으로써 포도원에 일하는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통일시킬 수 있다. 이 경우 포도원 농장주는 단체협약에 구속되어 임금을 지급하여야 하고, 단체협약을 위배하여 개별 약정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종일 근무한 사람이과 1시간 근무한 사람에게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